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레올로고스 왕조 (문단 편집) === 개요 === [[몬페라토 변경백국|몬페라토 변경백]] 굴리엘모 7세(Guglielmo VII del Monferrato)의 딸 비올란테가 [[몬페라토의 이리니|이리니]]라는 이름으로 [[안드로니코스 2세]]에게 시집을 갔는데, 그 후 이리니의 남동생으로 몬페라토 변경백이 된 조반니 1세가 아들 없이 세상을 떠났다. 남계 후손이 없어지자 몬페라토 변경백위는 안드로니코스와 이리니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 아들 테오도로스 팔레올로고스(Teodoro I del Monferrato)에게 돌아갔고, 그 후 몬페라토 변경백국은 약 200년간 팔레올로고 가문[* 팔레올로고스의 [[이탈리아어]] 발음]이 통치하게 된다. 이는 [[로마 황제|황제]]의 후계 구도를 위태롭게 하지 않기 위해 선택되었다. 이때 [[콘스탄티노폴리스]]의 [[귀족]]들은 '[[라틴]] [[야만인]]'들이 '[[포르피로게니투스|고귀한 자줏빛 혈통]]'을 무기로 삼아 [[동로마]]의 황위를 강탈할 것을 두려워 했고, [[가톨릭]]으로 개종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 [[면도]]한 [[얼굴]]과 [[이탈리아]]의 [[관습]]으로 나타난 테오도로스는 실제로 [[로마인|동로마인]]들에게 충격을 주었다. [[1533년]], 몬페라토의 팔레올로고 가문은 남계 후손이 끊겼다. 몬페라토 변경백 굴리엘모 9세의 딸이었던 마르게리타 팔레올로가는 만토바 [[공작(작위)|공작]]이었던 [[페데리코 2세 곤차가]]와 혼인하였으며 이로써 몬페라토 변경백위는 곤차가 가문으로 이어지게 된다. 그 후 [[1574년]] [[신성 로마 황제]] [[막시밀리안 2세]]가 몬페라토를 공국으로 승격하였다.[* 다만 적법한 남계 후손이 끊겼다는 것이지, 후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. 부계로만 따져도 팔레올로고 가문의 마지막 변경백이었던 조반니 조르조 델 몬페라토(1488~1533)에게는 플라미니오 팔레올로고(1518~1571)라는 [[사생아]]가 있었으며 플라미니오 팔레올로고의 3남 4녀의 후손들 중 테오도로를 통해 팔레올로고-오리운디, 페르디난도를 통해 팔레올로기 성씨를 쓰고있는 후손임을 주장하는 가문이 현재까지 존재한다. 특히 팔레올로고-오리운디 같은 경우는 그 계보까지 확인되었다.] [[페데리코 2세 곤차가]]의 증손녀인 마르게리타 곤차가는 로렌 공작 앙리 2세와 혼인하였는데, 둘 사이에서 태어난 클로드 프랑수아즈는 훗날 [[마리아 테레지아]]와 결혼하여 [[신성 로마 황제]]가 되는 [[프란츠 1세]]의 증조모이다. 따라서 오늘날의 [[합스부르크 가문|합스부르크-로트링겐 가문]]은 팔레올로고스 가문과 아주 미약하게나마 연관이 생겼다. 다만 [[합스부르크 왕가]]는 [[동로마]]보다는 [[서로마]]-[[신성 로마 제국]]의 계승권을 주장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